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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아프니까 청춘이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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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베스트셀러 1위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습니다.

베스트셀러에 그리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닌데....

얼마전 서울대형서점에서 책구경하는데....
제목이 확 들어오더군요!

20대 대학생들에게 타겟을 맞추어서 쓴 책이긴 하지만...
사학년을 바라보는 제가 읽어도 그리 나쁜 내용은 아니었슴돠...

자 그럼 역시나 책을 읽으면 밑줄 그었던 내용을 또 복습한다 치고 기입해 봅죠!

" 인생에 너무 늦었거나, 혹은 너무 이른 나이는 없다."

20대의 청춘뿐만 아니라 30대 40대도 충분히 공감가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자 그럼 빠져봅시다~~

그대 눈동자 속이 아니면 답은 어디에도 없다

열망은 힘이 세다. 세상의 잣대가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열정과 보람을 기준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좁고 험난한 길을 사서 가는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어느 순간이 되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리에 우뚝 서 있다.
매 순간 가장 합리적으로 최적화된 의사결정이 모인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바로 열망의 힘 때문이다.

자신의 열정이 아니라 남들이 다들 좋다니까 선택하는 직업이란, 그냥 안정적이고 고소득이 보장되는 것 같아서 선택하는 직업이란 공허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미래가 이끄는 삶, 꿈이 이끄는 삶, 열망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열망을 뜻하는 영단어 'passion'은 아픔이라는 의미의 'passio'를 어원으로 한다고 한다.
그렇다. 열망에는 아픔이 따른다.
그 아픔이란 눈앞에 당장 보이는 달콤함을 미래의 꿈을 위해 포기해야 하는 데서 온다.

가장 훌륭한 꽃은 없다. 저마다 훌륭하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제가 피어날 철에 만개하는 것이다.
문제는, 꽃에 대헛는 그렇게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으면서 자기 인생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춘들은 대부분 가장 일찍 꽃을 피우는 '매화'가 되려고만 한다.

많은 청춘들이 인생의 '신인상'에만 연연한다.
친구들보다 '빨리'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친구들보다 '먼저'전문직에 나가고, 친구들보다 '앞서'부와 안정을 누리고 싶어 한다.
다들 신인상에만 안달나 있을 뿐, 먼 훗날 주연상을 받을 수 있는 내공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다들 20~30대에 무슨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만 온통 관심이 가 있지, 인생의 사회적 전성기인 50~60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70대)에 이루어야 할 비전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기억하라, 그대가 노려야 할 것은 신인상이 아니라, 그대 삶의 주연상이다.

상황은 변한다. 그대가 고등학교 때 품었던 상상이 대학에 와서 크게 변한 것처럼, 그대의 지금 계획은 대학원이나 직장에서 경험하게 될 중요하고 소소한 여러 가지 정보와 사건을 만나 크게 바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계획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조마십은 내려놓고 미래설계의 문을 한 뼘쯤은 열어두어야 한다.

높은 계단을 오를 때는 저 끝이 아니라 '눈앞의 한 계단'에 초점을 맞추라는 것이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듯 목표의 시점을 짧게 잡고 하나씩 실천해 봤으면 좋겠다.

"스무 살에 이걸 하고 다음에는 저걸 하고, 하는 식의 계획은 내가 볼 때 완전히 난센스다. 완벽한 쓰레기다.
그대로 될 리가 없다. 세상은 복잡하고 너무 빨리 변해서 절대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대신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
그래서 멋진 실수를 해보라. 실수는 자신이다. 대신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멋진 실수를 통해 배워라."
(세계적인 미래학자 3인이 보는 '메가 트렌드',조선일보 위클리비즈)

안정과 고소득만을 기준으로 장래를 생각해서는 안된다. 훨씬 중요한 것을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일 자체의 즐거움이다.

어떤 직업이라도 좋으니 안정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발상은, 사실 매우 소비중심적인 사고다.
모든 것의 가격이 확실한 오늘의 세상에서 마음껏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높은 소득을 올려야 한다.
또한 일 이외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려면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양질의 소비를 위해서는 고소득과 안정성이 중요하다.
나도 인정한다. 소비의 질이 삶의 질롤 연결되는 현실에서, 소비는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한가지 사실은, 소비의 질이 곧 삶의 질과 '등식'을 이루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실력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재테크다.

"내게 나무를 벨 시간이 여덟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중 여섯 시간은 도끼를 가는 데 쓰겠다."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목표의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확고한 목표의식과 적절한 방법론을 갖추지 못하면 어떤 노력도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성취란 확고한 목표, 적절한 방법론, 성실한 실천의 세 가지가 어우러졌을 대 비로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이 또 좋은 것은, 내가 무척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사실은 전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외국에 갔을 때 더욱 그렇다.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열등감을 인생의 밑짐으로 삼고 살아가면 어떻겠는가?
감추거나 부정하려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성취의 동력으로 인정하고 살아가면 어떨까?
그럴 때, 열등감은 인생의 풍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일. 나태를 즐기지마. 은근히 즐기고 있다면 대신 힘들다고 말하지 마
-이. 몸을 움직여. 운동하고, 사람을 만나고, 할 일을 해. 술 먹지 말고, 일찍 자
-삼.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해. 지금 하지 않는다면, 그건 네가 아직도 나태를 즐기고 있다는 증거야.
      그럴거면 더 이상 칭얼대지 마.
-사. (마지막이야, 잘 들어!) 아무리 독한 슬픔과 슬럼프 속에서라도, 여전히 너는 너야. 조금 구겨졌다고 만 원이 천 원 되겠어?
      자학하지 마, 그 어떤 경우에도, 절, 대, 로.

바닥은 생각보다 깊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련 자체의 냉혹함이 아니다.
그 시련을 대하는 나의 자세다.
그 시련이 가혹한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은 결국 오롯이 나다.
내가 힘들게 받아들이면 힘든 것이고, 내가 의연하게 받아들이면 별것 아닌 것이다.
그대는 지금 그대의 시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사랑은 선거가 아니다. '그냥 좀 아는 사람' 수백 명보다, 영혼을 기댈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중요하다.
내가 그에게 무한한 몰입을 보일 때에야 비로소 그도 나에게 마음을 열고 책임을 지게 된다.
누군가를 '관리'할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얼핏 보아 대단한 자신감 같지만, 실은 매우 비겁한 처사다.
자신을 내던져 사랑할 용기가 없는 것이므로....

'내일이 이끄는 삶'을 살라고 말할 테지만, 사랑에서만큼은 예외다.

온몸을 던져 사랑하라.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라.

인생의 차꼬가 옥죄일수록 그보다 더 단단한 삶의 짖대가 있어야 한다.
몰두가 그 지지대다. 몰두가 나를 만든다. 우리는 저마다 우리가 몰두하는 그것이다.

진정한 몰두를 위해서는 자신으로부터의 혁명이 필요하다.
무엇을 서우치하고자 할 때, 충분한 재능을 가졌는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문제는 그 무엇에든 우리 삶을 바꾸고, 동시에 우리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을 만큼 몰두할 용기를 가졌는가, 하는 것이다.
어느 책 제목처럼 많은 바보들은 결의와 각오만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정작 실천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나태와 타성으로 포기하기 일쑤다.
늘 그렇듯 중요한 것은 실천이요, 용기다.
그것이 혁명이다.



기적이란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미화된 기억에 토대를 두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당치 않다고 여긴다.
정말이다.
그럼에도 그대들에게 하고 싶은 당부가 하나 있다. 신문을 읽으라는 것이다.

신문은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가장 유용하고 많은 정보를 준다.
많은 이들이 취업준비를 위해 시사와 교양을 따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신문을 꾸준히 읽으면 그 분비도 대폭 덜 수 있다.
신문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정부와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은 대부분 신문에서 정보를 얻는다.
그대가 조직의 의사결정자를 꿈꾸고 있다면, 아니 최소한 '주류'의 흐름을 간파하려면 그들의 정보 원천과 그를 바탕으로 한 사고의 논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글쓰기가 필요한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자신을 가장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알리는데 글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단 소설가들에게만 좋은 글쓰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다.
글은 여러모로 힘이 세다.

세상에는 정말로 다양한 전공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다양한 전공의 사회적 중요성은 보통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대 이웃의 지식을 다양하게 탐하라. 전공의 서열 따위는 냉큼 집어 던져라. 지식에는 서열이 없다.
시대의 수요가 있을 뿐이다.

가정하지 말고 실행하라. 하루하루 조금씩 남는 삶의 빈틈에서 꽃을 피워라.
그 시간의 빈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은 조금씩, 조금씩 달라진다. 시간은 영혼을 만드는 유일한 재료라고 했다.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 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지금부터 그대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나가라. 이 세상을 떠나는 날 보게 될 그대 인생의 커다란 그림을 생각하라. 오늘 하루 때문에 그 멋진 완성품의 한 구석이 듬성듬성 비어 있다고 생각하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무엇을 위해'계획표를 짤 것인가, 즉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관리란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둔다는 것은 '무엇을 포기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다는 식의 우유부단함은 삶의 방만을 부른다.
시간관리란 무엇인가를 용기 있게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포기는 분명한 목표가 있을 때 가능하다.

버릇이 들어 하게 되는 중독된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가장 어렵고 또 중요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낭비하면서도, 온갖 이유를 들어 자신을 합리봐하기 때문에 가장 고치기 어렵다.
하지만 네게 없던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기존의 습관을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특히 시간을 사용하는 중독된 습관을 가장 먼저 바꿔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그것은 성장하는 즐거움이다.
성장에 꼭 필요한 양분인 '시간'을 빼앗는 일이 즐거움의 원천이 될수는 없다.
그냥 대우는 시간이 많아 질수록 존재의 두께는 얇아진다.
무의미한 반복이 계속되는 취미, 혹은 시간 때우기를 당장 그만둬라.

많은 청춘들이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토로한다.
그러고는 다들 쇼핑하듯이 유행하는 스펙을 쌓느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주워 담는다. 그래서 항상 바쁘게 열심히 생활하고, 스펙도 제법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주변 경쟁자들과 별로 차별화되지 못한다.

바빠야 오히려 시간이 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렇다.
바빠야 하고 싶은 일의 소중함이 비로소 절실해진다.
더욱 중요한 점은 바빠야 생활이 치열해져 시간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시간이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제대로 사용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가할수록 쓸 수 있는 시간은 더 생길지 몰라도 치밀한 시간관리의 의지가 함께 줄어들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가장 바쁠 때 시간을 조개 '그 일'을 시작하라. 그렇다. 바로 지금 말이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하지 못한다.

인간의 삶에서 시간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시간은 우리 영혼을 만드는 재료라고 했다. 시간이 전부다.
그대의 내일은 오롯이 오늘의 24시간에 달려 있으므로. 그러므로 그대의 시간은, 어쩌면 그대보다 소중하다.

자신의 목표를 확고하게 하고, 그 목적지를 향해 순간순간의 발걸음을 뚜벅뚜벅 옮길 수 있을 때 현재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카르페 디엠'하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야 한다.
비록 꿈의 내용이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만큼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현재를 즐길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의미다.

1만 시간은 하루 3시간, 일주일에 20시간씩 10년간 모아야 이룰 수 있는 시간이다.
아무나 실천하기 어려운 연습량이다.
거기에 비법한 재능도 겸비해야 한다. 이것에 비하면 하루 1시간씩 1년, 모두 더해도 365시간은 참으로 인간적이지 않은가?
물론 1만 시간을 투자해 김연아선수처럼 된다면 바랄 것이 어벗겠지만, 모든 사람이 비틀스나 모차르트 같을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소박한 삶에서 나름의 성취감을 느끼면서 살기에 1-1 원칙이란, 하나의 '최소한'이 아닐까?

연습하는 자와 저축하는 자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
연습과 저축은 모두 미래의 달콤함을 위해 기꺼이 현재의 고통을 감수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감수는 1만 시간처럼 무지막지한 양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

소비자의 성향과 트렌드를 잘 분석하면 좀 더 소비자 친화적이고 창의적인 신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교육과정을 잘 개발한다면, 나에게 배운 학생들은 더 잘 취직할 수 있고, 우리나라도 아이폰 같은 제품을 내놓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도 더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어제와 오늘에 안주하지 않고 '내일'이 이끄는 삶, 남들이 좋다는 주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 그것이 내 인생의 지향이었다고 말이다.
'내일'이 이끄는 삶, '내 일'이 이끄는 삶을 살았다는 그런 자부심이 없었다면, 그대에게 내 중구난방의 연구 이력을 밑천 삼아 조언을 해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늘 '지금의 나'를 뛰어넘을 것을 생각하라. 기성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잠재력을 끝없이 확대해야 한다.
자기 세계에만 안주하고 있으면 무뎌진다. 그대가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지 않으면 언젠가는 사회가 그대를 오래되게 만들어버린다.
게다가 우리 인생은 생각보다 훨씬 길다.
당장 좋아 보이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늘 같은 레퍼토리만 반복하고 살아야 한다면 너무 지겹지 않겠는가?

영어에만 능숙할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능숙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지식만 높일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도 함께 높여야 한다.

스펙 높이기를 위해 애쓰는 노력의 10분의 1만큼만이라도, 나는 그대들이 인생의 지혜를 높이기 위해 관심을 두고 또 투자했으면 좋겠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갖춘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찌질한 알파걸, 알파보이' 소리는 듣지 않도록 말이다.
진정한 '알파 인생'은 결코 스펙이 만들어 주지 않는다.

학벌은 입사할 때는 중요할지 몰라도, 그 이후에 미치는 영향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더구나 요즘에는 회사마다 심층 면접등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하고 있어 학벌이 입사하는 데 미치는 영향력도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가 흔히 '성공했다'고 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양한 지식, 의사소통 능력, 리더십, 책임감, 성실함, 업무처리 능력, 조직적응력 등 셀 수 없이 많다. 출신 대학, 학과는 그중 극히 일부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학벌 이외의'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대학은 그대의 경쟁력을 쌓는 출발선일 뿐이다.

그대가 좌절했건 환호했건, 대학은 출발선이요, 시작이다.

마케팅의 핵심은 자기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그것을 구매할 이유를 딱 한 가지라도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
그 이유가 제품에 제대로 녹아들었을 때, 그게 바로 제대로 된 '브랜드'가 된다.
취업도 똑같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가를 구구절절 알리는 것은 의미 없다.
기업이 왜 자기를 뽑아야 하는지, 단 한 가지 이유라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펙이란 어떤 사람의 기여 가능성을 판단하기 곤란할 때, 이를 점칠 수 있게 하는 대리지표일 뿐이다.
학벌, 학점, 토익성적 등은 학습능력, 지능, 성실성에 대한 대리지표이고, 각종 자격증이나 여러 경험 등은 업무관련 지식, 조직적응력, 인성에 대한 대리지표다.

브랜드의 핵심은 '하나의 초점'이다. 그대가 가장 잘하는 것, 그 한 가지에 집중해 그대만의 이야기를 들려 주어라.

자신이 무엇을 제일 잘하는지 빨리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의 지향점이 분명해야, 주위에서 다들 쌓는 스펙이 아니라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자기 인생의 지향점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젊은 날의 경제적 풍요는 때로 독이 될 수 있다.
특히 그것이 자신이 꿈꾸는 업에서 얻어진 것이 아닐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청년기에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각성을 마취시켜버리기 때문이다.
절실함을 잃으면 미래가 흐려진다.

사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첫 직장이 아니라 마지막 직장이다.
첫 한 방으로 승부를 결정지으려고 하지 말라, 마지막에 누가 웃을지 보자며, 호흡을 길게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취업을 그대의 '거대 생애 계획'의 틀 속에서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초반의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능성만 있다면 말이다.

세상은 급변한다. 그리고 인생은 길다. 그 '감수'의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출발을 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남은 수많은 인생의 걸음들을 어떻게 걸어 나갈 것인가에 있다.

대학 울타리 밖의 사회라는 곳이 얼마나 엄혹한지, 그대는 그 가운을 벗자마자 깨닫게 될 것이다.
돈을 내고 다니는 조직과 돈을 얻기 위해 다녀야 하는 조직이 얼마나 확연하게 다른지, 그대는 그 꽃송이들이 채 시들기 전에 깨닫게 될 것이다.
고등학교 때의 기대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의 대학을 다녔던 경험을 기억해보라. 이번엔 더 확연히 다른 사회에서의 나날을 감내해야 한다.

사회는 외줄을 타는 곳이다. 일의 성취와 개인적 행복 사이에서 외줄을 타야 하고, 떠날 것인가 머물 것인가의 고독한 의사결정의 외줄을 타야 한다. 그래서 균형이 중요하다. 어늘 한쪽으로 무너지는 순간, 삶 전체가 균형을 잃는다.

마음의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라. 지난 꿈을 종종 회상하고, 다가올 미래를 항상 설계하라.
주어지는 기회가 기회인 줄 알 수 있도록 늘 준비하라.
그런 노력들이 하나둘씩 모일 때, 그대의 직장생활은 팽팽한 줄 위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균형의 끝자락에 성공과 보람의 조화가 닿아 있음을, 그대는 알게 될 것이다.

"If you don't know where you're going, just go."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말이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면, 그냥 가라.'

아프니까청춘이다인생앞에홀로선젊은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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