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다이어리

[테마광장] 내 사랑 다이어리

728x90
반응형

서랍도 열어보고 책장도 살펴보았다. 교무실을 들르는 교사들에게도 빠짐없이 물었다. 내 다이어리 못 보았느냐고. 그러나 어느 곳에도 없었다. 금년만 해도 열 달 동안 하루에도 몇 번을 들추며 분신처럼 맴돌던 것이 사라진 것이다. 그 곳에 남겨둔 기록들은 오후 회의에서부터 당장 참고할 것들인지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난감했다.  어디선가 '나 여기 있소!' 하며 나타날 것만 같았다.

 

이성을 찾아야 했다. 출근후에 보이지 않았으니 어제 오후를 떠올려보았다. 어제는 작심하고 책꽂이에서 하는 일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해묵은 연수 자료며 불필요한 책자, 오랫동안 들추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정리했다. 제법 분량이 많은 그것들을 폐휴지 통에 버렸다. 부랴부랴 분리수거장에 가보니 수거함은 비어 있었다. 부지런한 할머니가 다녀간 뒤였다.

 

사무실의 재활용품을 수거해가는 단골 할머니가 있다. 하루에 두 번 이상은 꼭 들른다. 빈 상자며 재활용품은 나오기가 바쁘게 그녀의 리어카로 옮겨졌다. 그렇지 않으면 빈 리어카로 주변을 배회하는 할아버지들이 슬며시 들어와 가져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내 손으로 다이어리를 폐휴지함에 넣을 리 만무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부근에 있었다며 단숨에 달려왔다. 다이어리의 표지 색깔 등을 일러주며, 어제 폐지 속에 그 비슷한 것이 있었는지 여쭈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모르겠다며 남감해 했다. 그러더니 어제 우리 사무실에서 가져간 박스는 다행히 상자에 담긴 채로 있다며 나를 당신 집으로 데려갔다.

 

그녀의 집은 가까웠으며 그곳은 할머니만의 왕국이었다. 주차 두 대는 너끈할만한 공간에 그간 수집한 박스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한 켠에 놓인 상자들을 가르켰다.

 

"저 눔 세 상자 중에 있을 거구만유-"

 

상자를 가운데 두고 할머니와 마주 앉아 뒤적거렸으나 다이어리는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상자에서도 찾지 못하자, 할머니는 아예 돗자리를 펴더니, 그곳에 상자를 쏟아 부었다. 다이어리는 상자 바닥에 있었다. 검은 비닐 표지의 오른쪽 상단에서 로마체의 숫자 '2013'이 나를 향해 웃음을 날렸다. 금박이 박힌 네 개의 숫자가 어깨동무를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쉰 것 같기도 했다. 녀석도 내심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무생물인 다이어리가 그렇듯 정겨워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언제 가져왔는지 할머니는 물 한 잔을 권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상자 세 개를 수색한 후라 물 한 잔도 반가웠다. 고마워하는 내게 그녀는 묻지도 않은 말을 조곤조곤 이어갔다. 그 곳에 모아두면 한 달에 두어 번 트럭이 가져가기 때문에 직접 고물상에 갈 일은 없다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재활용품을 모아두는 공간을 저렇듯 완벽하게 정리해 놓을 수 있을까. 앞으로 튀어나오거나 바닥에 널려진 것들도 없었다. 집주인이 사용을 허락했다는 사실에 수긍이 갔다. 나는 그곳에 간 목적도 잠시 잊고 할머니의 서재와 같은 공간이 주는 독특한 아우라에 빠져있었다. 재활용품을 수거해 갈 떄마다 지친 표정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빠트리지 않았던 왜소한 할머니가 아니었다. 그녀야말로 자신의 영역을 굳건히 다진 생활인의 한 사람이었다. 다이어리를 찾은 기쁨도 잊은 채,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할머니 삶의 한 면을 드령다 본것도 작은 수확이었다.

 

전리품이라도 된 양 다이어리를 가져와 책상 위에 놓았다. 고작 하루였으나 헤어질뻔한 연인과 해후한 설레임마저 들었다. 검은 표지를 어루만지며 조심스레 펼쳤다. 연간 계획부터 주간 일정까지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빼곡한 메모가 정겹기까지 했다. 평상시라면 일정이 더해질 때마다 분주하게 펼쳐질 시간들에 대한 부담으로 그리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다음 날 할머니는 부러 사무실에 찾아와 환한 얼굴로 말했다.

 

"공책 찾아서 다행이시지? 나는 허투루 안 버링게 다음에도 그런 일 있스믄 말만 해유."

 

 

 

 

 

나는 손 글씨에 남 다른 애착이 있다. 따라서 핸드백에는 언제나 수첩과 필기구가 담겨있다. 딸이 학생일 때는 매달 용돈을 받을 때마다 A4크기의 절반만한 얇은 노트를 선물 해주곤 했다. 크기도 작아 안성맞춤이던 그것의 용도는 다양했다. 주제별 글쓰기에 도움이 될 정보나 스치는 단상들을 적어놓았다나 요긴하게 써먹곤 했다. 한 달이 가기 전에 무언가로 지면을 채워야할 것만 같은 행복한 중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노트를 선물 하지 않는다. 제가 노트를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나도 스마트폰의 메모기능을 즐격 쓰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세련된 하얀 펜이 장착된 스마트한 폰을 구입했다. 간단한 메모는 기록과 보관이 용이하여 쓰임새가 많으리라 생각했다. 예상대로 녀석은 스마트했다. 지우개 기능까지 있으니 그저 놀랄 뿐이었다. 요긴한 메모부터 입력했다. 몇 개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도 저장해 두었다. 사용이 익숙치 않아 다소 긴 문장을 기록하기에 용이하진 않았으나 자판 기능도 있어서 그냥저냥 익숙해했다. 

 

그러나 그것도 마냥 스마트한 것만은 아니었다. 몇 달 후 인터넷 검색이 느려지더니 아예 연결이 되지 않아 수리센터를 찾았다. 기사는 버튼을 조작해 보고 자신의 컴퓨터에 연결해 종합 검진을 해보더니 수신 기능에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구입할 경우 값 비싼 부품이지만 무상 수리 기간인지라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컴퓨터와 같은 시스템이라며 '초기화'를 해도 되겠느냐며 물었다. 그게 별 것이겠냐는 생각에, 연락처와 사진만 남겨두면 된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휴대폰의 노트를 열어보니 저장된 메모가 사라졌다. 당장 열차 예매를 위해 필요한 코레일 멤버십 번호며 비밀번호가 사라졌다. 어딘가에 둔 멤버십 카드를 찾을 수도 없었다. 신기종으로 바꾸며 노트 기능을 십분 활용하다며 잡동사니들을 저장해 두지 않았던가. 등줄기가 후끈했다. 그놈의 '초기화'가 그런 결과를 가져올 줄이야. 나의 무지함을 탓하기 보다는 스마트폰이 전지전능하다는 생각을 버리는 쪽이 편했다. 

 

디지털이 대세를 이루기 시작한 십여 년 전 발간된 나의 작품집 제목은 '아날로그, 건널 수 없는 강'이었다. 아날로그에 대한 익숙함과 향수로 디지털에 온전히 발을 담그지 못하는 어겁주춤한 나의 상태를 대변한 글이었다. 지금도 아날로그와 절친한 나의 사고방식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요즘은 일주일이 멀다하고 'e-book'발간은 권유하는 안내 메일이 배달된다. 전망이 좋다는 전자책 발간의 이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어쩐지 책은 종이여야 할 것만 같다. 메모도 종이에 펜이라야 제 맛이라는 견고한 고정관념만은 버릴 수 없다. 'e-book'에서는 공감한 대목에 밑줄을 그을 수도 없고, 다 읽은 후 책장에 꽂아두고 책등과 눈 맞춤할 때의 뿌듯함도 맛볼 수 없으리라. '초기화'로 버튼 하나로 초토화되어버린 스마트폰이 범접할 수 없는 종이의 위력을 아는가. 

 

종이의 전생은 나무였다. 한 때는 광합성에 열중하며 태양을 흠모하였으리라. 우듬지는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며 잎을 키우고 가지를 여물게 했으리라. 거친 비바람을 견디는 인내를 지름 중심부에서부터 다소곳한 나이테로 키웠으니 고난의 세월을 견디는 지혜도 지녔다. 

 

나는 오늘도 다이어리를 편다. 아름드리 수목의 환생, 그것의 용도는 시간 관리를 떠나, 일상의 인도자라는 생각 마저 든다. 매일, 매주의 피할 수 없는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달이 가고 해가 가고 그것들이 쌓여 나의 삶이 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없다면 망각과 실수의 연발로 삶의 사이클은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다. 의식이 건재하는 한 메모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아니, 언젠가는 사고의 명료함이나 기억이 아스라해진다 해도 쓰는 행위야말로 나와 세상의 요긴한 소통 창구로 남을 것이다. 

 

-위의 글은 한국문구 3월호에 실린 엄현옥 님 (수필과 비평작가회의 회장)의 글을 직접 타자로 진성다이어리가 기입했습니다.-

(공감이 깊게 오는 글이기에 올립니다. ^^)

 

진성다이어리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