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효종대왕의 능
영릉
최초 합장릉. 여주시 능서면
원주에 드라이브하는 길에 만난 이정표. 세종대왕릉이 있다고 합니다.
너무 궁금한거에요.
당연히 가봤죠.
주차장도 널널하고요.
아침 일찍이었답니다.
관람은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 30분일찍 하절기 30분 늦게까지 관람할 수 있어요.
성인은 500원의 입장료가 있습니다.
세종대왕 역사문화관도 있고요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 제 4대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이죠. 하나의 봉분아래 석실 2개를 붙여 왕과 왕비를 함께 인치한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입니다. 1469년에 이곳으로 옮겨올 때 봉분 내부를 석실에서 회격으로 바꾸어 조성하였고, 석물 중 망주석, 장명등, 석수, 석인은 단릉처럼 배치하였으나 혼유석만 2개를 설치하여 합장릉임을 나타내었습니다.
조선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제조를 따랐습니다. 봉분둘레에는 난간석을 두르고 횡석주를 받치고 있는 동주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습니다. 능의 위치를 살펴보면 풍수지리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였으며, 좌우측으로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조 이후 영릉의 자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서거정 등의 반대로 옮기지 못하다가 1469년 (예종1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세종대왕문화역사관을 지날게요.
굉장히 이쁘게 꾸며져 있습니다.
1개의 기획전시실, 영상실, 카페,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답니다.
이미 최고의 왕인 만큼 후손에게 남긴 훌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느껴볼 수 있도록 조성이 되어 있다고 하네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길은 경쾌합니다.
조성이 잘 되어 있고요.
단풍나무도 너무 고귀한것.
아름다워요.
꽤 길게 들어가더라구요.
들어가서 세종대왕동상이 있는 앞쪽 길도 산책하기 좋고요.
계속 좌측으로 가볼거에요.
안쪽에 능이 있는듯 합니다.
새로 복원한 재실을 지나게 됩니다.
영릉재실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첨봉과 령등이 지내던 곳입니다.
제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죠. 집무실은 재방, 제향을 준비하는 전사청,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향대청,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부속 공간인 행랑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습니다.
그러니깐 새건물인 것.
안으로 들어가면 복장도 걸어놓았고요.
꽤 깔끔하게 조성을 해놓았네요.
담벼락과 마루도 굉장히 깔끔하고요.
조성이 잘 되어 있습니다.
값비싼 방짜유기 그릇도 있고요.
다시 쭈욱 걸어갑니다.
그러면 또 하나의 (구)재실이 나오죠.
지금은 작은책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까와의 재실과는 좀 연식이 된 듯 보이죠.
하지만 단아한 건물은 그대로 위엄 있어 보입니다.
이렇게 들어가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있습니다.
계속 위로 올라가 볼게요.
우측에는 연지가 있습니다.
지금 계절에 딱 어울리는 연못.
꽤 길게 들어와서 금천교를 지나고요.
홍살문을 지나게 됩니다.
밑으로 걸어야 해요.
꽤 길게 거닐면 우리나라 최고의 조선왕이 계신곳에 도착을 하게 됩니다.
정자각까지 잘 걸을 수 있고요.
좌측 왼쪽은 수라간이 있습니다.
수라간쪽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지요.
정자각에서 뒤를 돌아보면 이런 모습.
지금은 가을이라서 푸릇한 잔디들이 베이직하게 변했습니다.
왼쪽으로 올라와서 능을 더 자세히 볼게요.
올라오는 길이 있습니다.
하나의 봉분에 두 개의 혼유석이 놓여져 합장릉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영릉을 여주로 옮긴 이후, 그 능지가 천하의 명당이라 조선의 국운이 100년이나 더 연장되었다며 '영릉가백년'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영릉은 장헌대왕(세종)이 묻힌 곳인덴, 용이 몸을 돌려 자룡으로 입수하고, 신방에서 물을 얻어 진방으로 빠지니 모든 능 중에서 으뜸이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렇게 능을 둘러보고 밑으롤 내려옵니다.
그렇게 위대한 왕을 다시한번 쳐다보고요.
비각을 지납니다.
비각은 능 주인의 자취를 기록한 신도비나 표석을 세우고 비바람 따위를 막기 위하여 그 위를 덮어 지은 집입니다.
영릉 비각 안에 있는 영릉 표석은 영조 21년에 세운 것으로 표석 앞면의 글은 조상경이 썼고, 뒷면의 글은 이학이 썼습니다.
이제 효종대왕릉으로 또 하나의 영릉으로 가볼거에요.
왕의 숲길을 지나게 됩니다.
세종과 효종을 연결하는 길로 조선왕조실록에 1688년 숙종, 1730년 영조, 1779년 정조임금이 직접 행차하여 먼저 참배한후 세종능을 참배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왕의 발자취를 느껴볼까요.
꽤 거리가 있는 길이지만 산책로 코스로는 참 좋습니다.
살짝 언덕도 있고요.
그렇게 언덕을 넘어서 효종에게로 왔습니다.
제17대 효종대왕.
1659년에 돌아가시자 처음에는 구리시 동구릉에 능을 조성하였으나, 병풍석에 틈이 생기는 문제가 일어나자 167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1674년에 효종대왕의 비인 인선왕후가 돌아가시자 왕후의 무덤을 같은 언덕의 아래에 조성하여 조선왕릉 중 최초로 동원상하릉 형식이 되었습니다. 왕의 무덤에만 곡장을 둘러 왕후의 무덤과 구별하였고 나머지 석물의 배치와 규모는 동일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봉분에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며,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고, 횡석주를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12지를 한자로 새겼습니다. 과거 세조의 유언에 따라 병풍석을 세우지 않던 전통이 선릉(성종과 계비 정현왕후)때 십이지신상을 새긴 병풍석을 설치하면서 다시 시작되었다가, 영릉에서부터 또다시 사라지게 된 셈입니다.
대부분의 조선왕릉의 금천교가 홍살문 앞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효종대왕 영릉의 금천교는 홍살문을 지나 향어로 중간에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곳도 위로 올라갈 수 있어서 옆에서 조망을 할 수 있습니다.
앞에 있는 것이 인선왕후
뒤에 효종대왕
무덤에만 곡장이 둘러져 있고요, 왕과 왕비의 무덤을 위아래로 배치한 동원상하릉의 형식입니다.
그렇게 관람을 하고 이제 밑으로 내려갑니다.
재실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곳 효종 영릉 재실은 조선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보물(제153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멋진 나무도 볼 수 있지요.
지금의 나무는 아니지만 재실앞에 회약목이 있는데 보통 작고 낮게 자라는 나무인데, 영릉 재실의 회양목은 보기드문 큰노거수로 그 생물학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가 매우 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 앞에서 다시 우리가 주차한 곳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곳에도 주차장이 있지만 대부분 아까 처음에 주차한 곳에 주차를 하거든요.
가면서 길가의 나무들이 어찌나 아름답던지요.
딱 단풍철에 색색의 단풍을 잘 조망할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다시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던 곳으로 이동.
광장에 그분때에 발명한 과학기구들을 조성했습니다.
과학 기술을 연구하고, 기구를 발명하는데 있는 힘을 다하였죠. 젊은 과학자를 양성하여 혼천의 등 천문 관측 기구와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인 양부일구, 물시계인 자격루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참 의미있는 릉에 다녀왔네요.
우리가 나올때는 주차를 많이 한 모습이었고요.
여주에 갔을때 꼭 한번 가볼만한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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