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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명성황후 생가. 어릴적 여덟살까지. 경기도 여주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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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여덟살까지

명성황후 생가

경기도 여주 유형문화재


 

 

 

여주에 가볼만한 곳으로 우선 세종대왕릉 영릉이 있습니다. 

이전에 가보았고 이곳은 예전에 포스팅 올린적이 있어서 패스~ 

요번에는 명성황후생가로 향했습니다. 

이곳은 우선 설날당일 추석당일은 오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추석당일날 갔다가는 다음날 가게 되었죠ㅗ. 

 

 

비운의 여인 명성황후가 여덟살까지 살던 곳입니다. 

 

그래도 어릴적 자라난 곳이지만 양반댁이라서 그런지 꽤나 넓은 곳이었구요. 

입장할때는 따로 입장료가 없구 주차료만 받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초입에는 추모비가 있고 연못이 크게 있었네요. 

입구쪽에는 식당오픈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고요. 

 

 

 

안쪽에 기념관에 들어가서 관람을 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살던집의 좌측에 중앙 가장 안쪽에 기념관이 있으니 이곳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선이도에 담긴 조선왕실과 여주 

 

 

선이도는 채색 인쇄된 석인본으로 추정되는 유물입니다. 한반도를 묘사한 배경에 건지산에서 발원한 나무가 그려져 있으며 시조 이래의 선계와 제왕들이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으로 표시되었습니다. 나무의 뿌리 부분은 시조, 나무 끝자락인 상단에는 순종, 그 좌우의 가지에는 왕실 계보가 나뭇잎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지역별로 분포하고 있는 왕릉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건지산에서 파생된 조선 왕실이 순종까지 이어지며 번창했으며, 왕실의 역사와 영향력이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는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선이도는 전주 이씨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신라 사공공 이한부터 조선시대 마지막 왕인 순종효황제까지 조선 왕실의 왕과 왕비, 구성원, 능침의 위치 등을 기록한 조선왕실의 계보도입니다. 

명성황후기념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선이도에는 제작 시기 등의 세부사항이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 왕인 순종효황제 유릉의 위치기 기재되어 있고, 순종의 서거 시기가 1926년인것을 고려하면 적어도 1920년대 후반 이후에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정김에 제작되었다는 것은 조선 왕실의 문화와 전통을 계승했던 대한제국 황실이 식민지 조선의 이왕가로 존재하면서 기존의 관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결과이며, 조선 왕실의 선대 계보도와 능침에 대한 내용을 기재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왕직 내지는 이왕가의 영향을 받아 제작했다고 추정됩니다. 

 

 

 

복도를 지나면서 연표를 만날 수 있고요. 

 

 

 

시간대별로 잘 이해되도록 연표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곳 구경하시는 분들도 유심히 보시더라구요. 

저도 아주 오래전의 역사가 아니라서 유심히 구경했습니다. 

 

 

 

 

아픈역사 일제에 의해서 마지막에 처참히 생을 마감하게 되지요. 

이를 표현한 그림인듯 합니다. 

 

 

 

 

 

기념관 가장 뒷쪽에서는 그녀에 관해서 연관된 사건 인물 등을 알려주고 있고요. 

 

 

 

 


 

 

 

 

밖으로 나와서 생가로 향합니다. 

지금까지는 기념관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라면 이제 실제 살던 집을 보는 것입니다. 

 

 

 

이런 집에 한번 살아봐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단아하고 또 꽤 넓은 집이었습니다. 

 

 

 

 

 

 


 

 

 

어머님도 유심히 잘 구경하시더라구요ㅗ. 

그리고 입구 쪽으로 갑니다. 

먹거리가 오픈을 했네요. 

 

 

 

막걸리 전 등을 판매하기 시작합니다. 

이날 우리가 거의 처음으로 온 손님 같아요~ 

 

 

 

 

 

전도 3개 먹음직 스럽게 나오고요. 

 

 

 

 

그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구경을 합니다. 

 

 

 

감고당 

조선 왕조의 두 왕비가 기거했던 건물입니다.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장희빈과의 갈등 속에서 물러났다가 보위될때까지 5년여 동안 살았습니다. 명성황후가 8살때 여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간 후 1866년 왕비로 간택. 책봉되기 전까지 머물렀습니다. 

감고당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1761년 영조가 효성이 지극했던 인현왕후를 기려 '감고당'이라 편액을 하사한 후부터입니다. 원래는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덕성여고 본관 서쪽에 위치했으나 1966년 도봉구 쌍문동으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쌍문고등학교 신축계획에 따라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2006년 명성황후생가 성역화사업을 추진하던 여주시가 현재 위치로 이전 건축했습니다. 

여러 차례 수리하고 이전하면서 감고당의 본래 모습이 변형됐지만 조선시대 중부지방 사대부 집안의 전형적인 건축구조 형태를 보여줍니다. 

 

 

여주에 가시면 들르기 좋고 공부하기 좋은 생가

만족하고 생각하면서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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