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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창덕궁. 후원 비원. 서울 고궁 나들이 산책. 데이트코스로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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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역에서 내려서 창덕궁에 갑니다. 

서울 고궁 나들이 오래간만에 가보네요. 

가는길에 TV버스킹 했던 곳. 보이고요. 

비긴어게인에서 봤던 곳. 

 

제가 좋아하는 수현이 이곳에서 노래불렀다니 신기합니다. 

한낮인데도 네온이 켜져 있는 모습도 멋지고요. 

건물에 녹색 넝쿨이 한가득 감싸고 있는 모습도 좋아요. 

계속 걸어가볼게요. 

 

 

드디어 돈화문. 

종로3가에서 쭈욱 걸어오면 단성사 지나서 만나게 되는 3거리. 

현대본사 바로 우측에 위치해 있습니다. 

 

 

우선 표를 끊어야 겠지요. 

표를 끊는곳은 돈화문의 좌측에 있습니다. 

들어가기전에 단독 건물이 있지요. 

 

 

몇가지 기념품도 판매를 하고 있네요. 

 


 

 

돈화문에 들어섰습니다.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은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을 창건했습니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되지 않았고, 270여 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 제1의 정궁으로 역할 하였으며,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합니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궐이란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궁궐 예제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복궁 역시 이 제도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산자락에 자리 잡은 창덕궁은 인위적인 제도를 벗어나 주변 자연 지형에 순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 되었습니다. 왕실 생활에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 구성은 경희궁, 덕수궁 등 다른 궁궐 구성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1917년에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 짓는 등 많은 건물들이 변형, 훼손, 철거되었다가, 1991년 부터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으며, 동궐의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예로 평가됩니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길이 오른쪽으로 뻗어나게 되고요. 

멋진 나무들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보호수형태의 신기한 나무들!! 

 

 

인정전 일원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문안도 하고 정사를 아뢰며 외국의 사신을 접견하는 등 중요한 의식을 행하던 곳입니다. 앞쪽에는 임금이 다니는 길인 어도와 벼슬의 등급을 나타내는 품계석을 둔 조정 마당을 두어 국가의 상징 공간으로 삼고, 뒤편에는 인정전 뒷산인 매봉과 맥이 이어지도록 계단식 정원을 마련하였습니다. 조정 마당을 둘러싼 내행각에는 호위대 주둔소와 창고 등을 두었으나 현재는 비어 있습니다. 

인정문 앞 외행각의 사다리꼴 마당은 불규칙한 지형과 규칙적인 궁궐 형식을 절묘하게 융합한 공간으로 세종 때의 건축가 박자청이 설계한 것입니다. 외행각과 진선문, 숙장문은 1996년에 다시 세운 것입니다. 

 

 

외국인들도 감탄하면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건축물. 

 

 

들어가서 왼쪽으로 가보았죠. 

왼쪽도 길이 이어져 있더라구요. 

 

 

역시 컬러풀한 지붕의 색감이 남다릅니다. 

 

 

선원전 일원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태조 이하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의 어진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1년에 새 선원전을 후원 깊숙한 곳에 건립하여 제사 기능을 옮기면서 선원전은 빈 곳이 되었고, 부속건물들은 2005년에 복원했습니다. 9칸의 몸채 앞 좌우로 진설청과 내찰당을 덧붙였고 재실인 양지당을 앞쪽에 설치해 제사 의례에 사용했습니다. 선원전 영역 뒤편에 있는 의풍각은 일제강점기에 신축된 것으로 전하며, 제사용 그릇과 도구 등을 보관하는 창고였습니다. 

 

 

옆으로 돌아나와 바라본 인정전. 

그 웅장함이 멋들어 집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이곳 분위기를 더욱 잘 아실 수 있으실 거에요. 

경복궁하고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쪽에는 커튼과 조명도 놓여져 있을정도로 현대화된 곳이죠! 

 

 

옆으로 나가기 전에 찍어본 이동통로. 

이곳은 출입금지구역이라서 팔을 뻗어서 사진을 찍어야 했었네요. 

 

 

선정전

선정전은 궁궐의 편전으로서 왕잉 고위직 신하들과 더불어 일상 업무를 보던 곳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 동쪽에 세워졌습니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 보고, 국정 세미나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매일같이 열렸습니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은 비서실, 창고 등으로 이용되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습니다. 선정전은 청기와를 올린 것과 앞쪽 선정문까지 복도각 건물로 연결한 것이 특징입니다. 선정전은 한때 혼전으로 쓰였는데, 복도는 그때의 흔적입니다. 

 

 

왕은 이런 공간에서 업무를 보았군요~ 

 

 

희정당

왕의 거처이며 집무실입니다. 

 

이쯤해서 외국인을 만났는데 놀랍다는 말을 연신하더군요. 

고궁의 기품과 위엄이 놀랍습니다. 

컬러감도 풍성하구요~ 

 

 

현대식으로 이루어진 응접실같은 풍경

 

 

대조전 일원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이며 왕실의 큰 행사도 자주 열렸습니다. 

대조전은 창덕궁의 침전으로 안대청을 사이에 두고 왕과 왕비의 온돌방이 설치되었습니다. 원래의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를 열어 경술국치를 결정했던 비운의 장소이며, 행각과 복도로 여러 부속 건물들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1917년에 불에 타 없어진 터에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 지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왕비였던 순정효황후의 거처로 해방 후까지 사용되었기 때문에 고유한 장식과 벽화, 문살 등이 잘 남아 있습니다. 뒤편에 4단의 계단식 정원을 만들어 후원으로 삼았고, 누마루를 뒤편으로 돌출시켜 이를 감상하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보경당 터 일원

보경당과 함께 태화당과 재덕당이 연이어 있던 곳입니다. 

조선 전기에는 선정전과 더불어 임금이 평상시에 머물던 편전으로 이용되었으며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17세기 이후에는 후궁이 머물기도 하였습니다.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처소이자 그녀가 영조를 낳은 곳입니다. 

 

안쪽의 조명풍경도 눈에 띄지요. 

근대화 되기전의 조선말기 풍경인듯 하네요. 

 

 

안쪽으로는 굴뚝도 설치되어 있고요. 

창문히 현대화되어 있습니다. 

 

창문안쪽은 더더욱 현대화 된 시설을 볼 수 있었고요. 

 

 

방을 따뜻하게 하는 뒤쪽 아궁이의 모습도 예전 어릴적의 추억을 돋게 하는 풍경이었네요. 

 

 

그렇게 초입풍경을 보여드렸습니다. 

왕의 거처들! 

위엄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

 

서울에서 데이트코스로도 좋은 궁궐 창덕궁! 

놓치지 마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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