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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창덕궁 후원. 연꽃잎. 서울고궁산책 . 옥류천 유일한 초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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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옥류천.

서울고궁산책

창덕궁 후원 유일한 초가집


 

 

서울시내갔을때 빌딩숲속만 다니지 말고요. 

고궁산책낮에 하고 저녁에는 다른곳에서 즐겨도 충분하니깐~ 

역시 우리나라 궁궐은 최고입니다. 

경복궁옆의 돈화문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조선시대 궁궐. 

근현대사로 변모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조명시설도 있는것을 볼 수 있죠.

 

안의 모습을 보면 가구도 자개 가구

지금 현재 생활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겠죠.

위에는 우아한 조명시설이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고 있는 것이죠. 

 

 

뒤를 돌아보면 이런 모습. 

외국인들도 연신 뷰티풀이라고 그리고 놀랍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문화가 이렇게나 멋진걸요. 

지붕의 칼라감이 남다른 나라. 

 

지금까지 

성정각 일원

현재 후원으로 가는 넓은 길에 큰 건물인 중회당이 있었고, 이 일대가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이었습니다. 순조의 장남이 효명세자가 대리청정 때 주로 기거하면서 정궁으로 쓰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동궁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는데, 육각누각인 삼삼와, 그 옆의 칠분서 그리고 승화루는 복도로 연결되어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되었습니다. 성정각은 세자의 공부방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왕가의 내의원으로 쓰였으며, 단층의 몸채에 중층의 날개채가 직각으로 붙은 독특한 모습입니다. 

 

 


후원으로 가보기 

 

돈화문으로 들어서서 창덕궁을 둘러보았다면 이제 안쪽으로는 후원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따로 입장료를 또 받는줄 몰랐죠. 

얄미웠지만 어쩔수 없이 입장료를 지불했는데, 하루 입장객의 정원이 정해져 있는줄 몰랐습니다. 

예약을 안했지만 현장에서 아직 정원수가 남아서 들어갈 수 있었네요. 

이런 것은 나중에 나오면서 오늘 입장이 마감되어졌다고 써져 있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시대라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평소에도 이곳 후원을 아끼려고 그런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시 매표를 하고 들어갑니다. 

갈까 말까 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봐야죠. 

반대편에서는 창경궁으로 들어온 분들도 저 문으로 해서 후원에 다시 입장할 수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도 너무 아름다운 고궁담길. 

 

 

창덕궁 후원

태종 대 때 창덕궁 창건 당시 조성되었으며, 이곳 뿐만 아니라 창경궁의 후원이기도 하였습니다. 임진왜란때 대부분의 정자가 불타버리고, 1623년 인조 때부터 계수.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습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조성하여, 인위적인 손질을 최소화 하면서도 자연을 더 크게 완성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합니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정원이 펼쳐집니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결국은 큰 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됩니다. 세계 대부분의 궁궐정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인데 비해. 이곳은 여러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정원이었습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었고 때론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습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훈련도 행해졌고,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습니다. 

 

 

처음 나타난곳. 

연꽃잎이 어마어마한 정원이 나타났죠. 

 

 

오래간만에 이런 거대한 연꽃잎을 봅니다. 

그 주위도 참 건축물들이 아름다웠고요. 

왕의 산책로는 이러한가 봅니다. 

비록 인공적이지만 이렇게 조성해 놓은 것도 참 지혜로워요. 

 

 

위쪽으로는 취병. 

조선시대 독특한 조경 기법의 하나로 푸른 병풍처럼 만든 울투리입니다.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할하는 담의 기능을 하면서 그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주합루의 취병은 1820년대 그려진 '동궐도'의 그림을 토대로 하여 '임원십육지광병법'에 기록되어 있는 제작 기법대로 대나무틀을 짜로 신우대를 심어 재현한 것입니다. 

 

 

대나무 있는 쪽에서 바라보면 이런 모습. 

마침 하늘도 무척이나 높고 파랬었죠. 

연못안의 소나무도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까지 부용지와 주합루

후원의 첫 번째 중심지로서, 휴식 뿐 아니라 학문과 교육을 담당하던 비교적 공개된 장소였습니다. 주합루일원의 규장각과 서향각등은 왕실 도서관 용도였고, 영화당에서는 때로 왕이 입회하는 특별한 과거가 치러지기도 했습니다. 개인적 휴식을 위한 부용정은 연못에 앞발을 담그고, 행사를 위한 영화당은 연못에 면해 있으며, 학문을 연마하던 주합루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하나하나의 건물들도 각각 특색이 있고 아름답지만, 서로 어루러지면서 서로에게 풍경이 되는 정묘한 경관을 이룹니다. 

 

 


계속 이동. 

큰 나무그늘에서 조금 쉬다가 이동하면 곧 좌측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나오지요. 

 

또 하나의 연못

애련지와 의두합

순조의 맏아들인 효명세자는 총명하고 인품이 높아 18세에 순조를 대리하여 정치를 지휘하다 22세로 요절한 왕자였습니다. 이곳에는 숙종 대에 건립한 애련정이 있었고, 효명세자는 1827년부터 여러 시설물을 세워 새로운 정원을 만들고 학문을 연마하며 정치를 구상했습니다. 그가 공부방으로 사용하였던 의두합은 단청을 하지 않아 단촐하고 소박하며, 또한 독서와 사색을 위하여 궁권 내 유일한 북향 건물로 되어 있습니다. 단칸의 애련정 역시 작지만 애련지 연못에 반쯤 걸친 모습은 경쾌하며 정자안에서 내다보는 풍경은 절경을 이룹니다. 

 

 

저도 저곳 정자안에서 시를 읊으면서 책을 보고 싶어라. 

참 소중한 기억일 듯 싶어요. 

 

 

연경당 

효명세자는 아버지인 순조에게 진작례를 올리기 위해 1828년 연경당을 건립했는데, 원래 모습은 지금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진작례란 신하들이 왕과 왕비에게 술과 음식을 올리는 행사로서 효명세자는 이를 왕권 강화책으로 이용했습니다. 현재의 연경당은 1865년 고종이 새롭게 건립했습니다. 사대부 살림집의 제도를 본떠 왕의 사랑채와 왕비의 안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서재인 선향재는 중국풍의 벽체와 서양풍 차양을 설치했습니다. 뒷마당 모퉁이 높은 곳의 농수정은 마치 매가 날개를 편 것같이 날렵한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문 앞에서 애련지한번 쳐다봐주고 들어갈게요. 

 

 

한복입은 소녀들이 구경하고 있고요. 

약간의 서양식지붕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속 이어지면서 위로 올라갈 수 있지요. 

 

 

그렇게 위로 올라가면 계곡으로 만나는 길이 나옵니다. 

 

 

존덕정과 정조의 교시

존덕정 안 북쪽 벽에 빽빽하게 쓴 현판이 있는데 정조가 집권말기인 1798년에 직접 지은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는 강력하고 무서운 내용입니다. 평생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했던 정조의 준엄한 꾸짖음을 듣는듯 하군요. 천장 중앙에는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역시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네요. 

 

 

이곳 주위의 풍경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이 곳이 끝이 아니죠. 

 

 

계속 위로 올라갑니다. 

200m 이상정도 올라가면 새로운 길이 나오는데요. 

 

 

좌측으로 돌아서 가다 보면 옥류천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구석에 있고, 마지막에 있는 곳이 옥류천이지요. 

 

 


 

 

옥류천 일원

북쪽 깊은 골짜기에 흐르는 시내를 뜻합니다. 

1636년 거대한 바위인 소요암을 다듬고 그 위에 흙을 파서 휘도는 물길을 끌여들였고 이 물길을 아래로 내려뜨려 작은 폭포가 되게 하고 이 폭포가 떨어진 곳에서 옥류천은 시작됩니다. 

구불구불한 물길 위에 술잔을 띄우고 시를 짓는 놀이린 유상곡수연이 이곳에서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인조의 친필입니다. 작은 정자가 곳곳에 있는, 매우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정원입니다. 옆에 작은 논이 있는 청의정은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초가집입니다. 

 

 

가장 안쪽에는 벼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 또한 아름다웠고, 말 그대로 주위는 단아했습니다. 

 

 

벼 안쪽에도 정자가 있고요. 

 

 

저는 후원에서 이 공간이 가장 마음에 들더라구요. 

힘들다고 이곳까지 안와봤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주목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라고도 하죠. 그만큼 오래 살며 죽어서도 금세 썩지 않은 좋은 나무라는 뜻이랍니다. 약간 붉은빛이 나는 주목의 속살 또한 나무나라에서는 명품에 속한답니다. 임금님들의 나무 널로 애용되었고 고급 활의 재료가 되기도 했습니다. 항암제로 유명한 탁솔도 역시 이 나무에서 만들어집니다. 

 

 

이곳이 아마 유일한 초가집이 아닐까 싶어요. 

여타의 다른 초가집보다는 그래도 훌륭한 편이지요. 

 

 

요렇게 단아하게 흐르는 물줄기. 

저 위에서 바위를 깍아 물이 흐르게 만들었다는 것이 맞습니다. 

 

 

바위길과 그 사이로 풍경이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멋진 모습을 자아냅니다. 

 

 

 

창덕궁 후원 가장 안쪽 옥류천 일원

 

그래서 이 모습을 계속 간직하려고 동영상을 찍어보았죠! 

 

 

 

 


이제 모두 둘러본듯 해서 퇴장하는 길. 

아까와는 다른 길로 걸어가 봅니다. 

 

 

정조의 무서운 글귀가 있는 것을 다시 지나는데 이곳에서 계속 직진해서 걸어갔지요. 

아까 올라올때는 사진에서 보이는 곳으로 왔었지요. 

 

 

외국인들도 한복을 입고 이곳에서 지내봅니다. 

물색이 탁한것은 흐르지 못해서 그러리라. 

녹색으로 변해 있는 것이 더 아름다왔죠. 

맑지 않은 것이 아니리라~ 

 

 

그렇게 아름다운 후원을 뒤로 하고 이제 다시 창덕궁으로 진입. 

 

 

모든 문에는 컬러감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날씨가 더워서 그늘 있는 쪽으로 걸어야 했지요. 

 

 

그렇게 아름다운 고궁나들이 였습니다. 

 

시내 가보셨을때 종로 위에 있는 돈화문을 거쳐 창덕궁을 꼭 거닐어보시길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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