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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제주 숨은 곳. 조천 와흘리 설촌. 넓은 못 (연못) 옆 4.3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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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흘리 설촌 넓은 못

제주 숨은 곳 조천

(연못) 옆 4.3 기념비


 

 

 

 

우리가 한달 살이 했던 와흘리에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서 로터리집에서 꽤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걸어야 했지만 분리수거하러 갈때 전혀 힘들지 않고 즐겁게 갔었죠. 

하루는 대낮에 갔었을때 더 운치 있었습니다. 

곳곳의 풍경을 더 잘 볼 수 있었기 때문이죠. 

 

 

 

이제 분리수거를 하고 나왔습니다. 

넓은못가운데에는 정자가 있고요. 

꽤 운치있게 그리고 마을의 중심에 규모있게 만들었죠. 

도로에서 조금 들어와서 마을안에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를 수 있어요. 

 

 

 

6월의 날씨는 습하지도 않고 적당히 더워서 괜챦았습니다. 

장마철전이라서 다니기에도 쾌적했고요. 

물론 해수욕도 적절히 했습니다. 

길가에 꽃도 피어있고요. 

 

붐비지 않은 이곳도 얼추 아름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곳은 최첨단 분리수거장의 뒷편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 그저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네요. 

들어가서 조금 쉬면 얼마나 편안합니까. 

더위를 식힐수도 있고요. 

신선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계절이면 더욱 그렇겠죠. 

 

 

 

 

가운데에 앉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저씨들 오셔서 장기나 바둑 두셔도 좋을 듯 해요. 

 

 

 

해는 중천 

역광이라서 흐려 보이지만 그래도 북쪽으로 잘 올라가져 있습니다. 

 

 

 

그에 반해서 남쪽을 바라보면 넘나 화사롭지 않겠습니까. 

저쪽으로 가서 우측방면이 로터리라서 그곳까지 걸어가면 됩니다. 

우리는 시간도 많으니 천천히 구경하고 싶어요. 

 

 

 

당분간 운동장을 폐쇄한다고 써놓았을때. 

역시 이곳도 천연잔디밭 

 

 

 

이토록 복지가 잘 되어 있는 것을 보니 마을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무언가 살아갈 거리가 풍족하게 있다면 그리고 오후 4시경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 저는 제주에 사는것도 넘나 근사할 것 같아요. 

마음이 넉넉해 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괜한 생각인가~ 

 

 

 

운동장 입구 옆에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어쩜 '제주도우다' 소설에 그리 많이 등장하는 그런 와흘리이기에 이곳의 피해자는 무척이나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또 진실을 우리 세대가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 

 

 

 

그 내용을 적어보자면

 

4.3시절 악귀같은 세상만나 여기 논흘에서 괴뜨르에서 물터진골에서 박성내에서 어느 굴렁진 골짜기에서 이름 모를 바닷가에서 무소불위의 총검 아래 쓰러져 가신 영령들이시여 사랑하는 처가속들에게 가노란 말 못 다 이르고 가신 영혼님네 구름길 바람길에 정처없이 떠도는 영신님네 그간 쌓인 한숨이 바람이 되고 그간 흘린 눈물이 비가 되었으니 통한의 세월을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로 견뎌오다가 오늘날은 육십년이 지나서야 설운 자손들이 뜻과 힘을 모아 2006년 정성으로 빗돌을 세워 4.3영령들을 삼가 기리나니 부디 안속하소서 자손들에게 눈물 한숨 거두게 하소서

 

 

이 순진한 분들에게는 그저 통한의 사건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아름다웠던 돌담길 

 

 

아직 연못을 벗어나지 않았는데 연못에 관한 글귀가 안내되어 있었네요. 

 

예로부터 이 연못 넓은못은 지역주민들이 우마에게 물을 먹이고 힘든 밭일을 끝내어서 몸을 씻으며 피로를 풀던 공동 목욕탕으로 주민들의 쉼터이자 정담을 나누던 장소며 선조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유래깊은 곳입니다. 

70년대 이후 마을에 상수도가 보급되면서 이 연못은 매립 위기에 처하여 우리들의 추억속으로 사라지는 듯 하였으나 지역주민 모두의 노력으로 연못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여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답니다. 

 

 

 

감귤나무 

 

 

 

이쁘게 지어진 집들을 보면 그냥 마냥 구경합니다. 

길가에 꽃들도 무척 운치 있고요. 

 

 

 

집에 수국들이 넘나 부러워요. 

 

 

 

 

 

저런 집에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물론 밤에는 적막하겠지만 그래도 장점이 더 많을 듯 합니다. 

 

 

 

 

 

 

 

감귤나무 많네요. 

 

 

 

복지회관을 지납니다. 

 

 

 

경로당도 무척 규모 있지요. 

 

 

 

 

와흘리 설촌 유래

 

현재 삼양에 거주하는 김영지씨의 입도선조 김해김씨 김만회가 고려 충정왕 때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좌의정까지 되면서 마음이 곧고 사심이 없이 나라의 대사를 돕다가 태조 즉위 시 신하로서 두 임금을 모실 수 없다는 말 때문에 미움을 받아 제주로 귀향 오면서 후손이 살게 되었답니다. 후손들은 곽지, 김녕 등을 거치면서 약 300~350년 전에 입도조 9대손이 살곳을 찾아 헤매다가 팽나무 있는 곳에 이르러 사방지형을 둘러보고 아늑하고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 하여 정착하게 된 것이 설천 된 배경입니다. 

차차 사람이 모여 살게 되어 마을의 이름이 한거리라 불렸고, 입도조 14대손인 김일룡이 속칭 불칸터라고 불리는 곳에 살다가 불로 인해 온 마을이 폐동이 되니 주민들이 의논하여 한거리 마을은 아늑하고 땅이 좋으나 축우마약수에는 약수터가 한거리에서 약 500m 떨어진 거리에 있어 불편하니 축우마약수터인 속칭 넓은 못 가까이로 이주하기로 중의를 모았답니다. 그리고 지금의 본통인 지형을 보니 한라산의 정기가 기시네오름으로 이어져 뒷 맥과 서쪽의 청룡은 좋으나 동쪽의 백호는 우방으로 인파가 먹었으니 우방에 돌탑을 쌓아 우방을 막아 맥을 막고 마을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 4.3사건으로 폐동이 되고 1954년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급속 충전소 

 

 

 

 

 

우리는 길가로 나와 로터리로 왔지요. 

바로 저 팽나무 뒤가 우리집 

 

 

 

 

 

이곳이 그 유명한 팽나무 

할머니의 전설 '제주도우다'에 소설에도 이곳 팽나무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나무는 아니겠지만요. 

 

 

 

와흘리

누온홀 또는 눈홀, 궷드르곶이라 불리웠던 이곳은 한라산의 정기를 받은 산세 모습이 사람이 편안하게 누운 모습과 같다하여 붙여진 지명입니다. 민속신앙을 대표하는 와흘 본향당이 있어 매년 큰 당굿이 열리는 이곳은 구그네오름과 꾀고리오름, 새미오름, 당오름 등 제주의 아름다운 오름으로 둘러싸인 중산간마을이죠. 제주에는 마을의 토지와 마을 사람들의 출생. 사망 등을 관장하는 마을수호신을 본향이라 하고, 이 본향신을 모신 산당을 본향당이라고 합니다. 제주 곳곳에 있는 본향당에는 송당 본향산으 자손들이 흩어져 있는데 와흘 본향산은 송단 본향산의 11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이며, 백조도령은 와흘에 사는 서정승의 딸과 혼인하여 처신으로 삼았습니다. 중산간마을인 이곳은 와흘동굴 피난 터, 위령탑과 같은 제주의 아픈 역사인 4.3 유적지도 있습니다. 팽나무와 본향당이 지키고 있는 조용하고 평온한 마을입니다. 

 

 

 

 

 

와흘 팽나무집이 우리집

즉 우리는 3층 그리고 우리부부가 묵었던 4층 이용을 했어요. 

 

 

 

 

 

 

 

주차장에는 전기차 충전기도 있었죠 ^^ 

 

 

아름다운 마을이고 또 아픔을 간직한 마을입니다. 

메밀도 유명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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